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

유럽 열강들 1900

전쟁 발생 원인을 알기 위해 배경을 먼저 파악해 보자.

당시 유럽에는 5대 주요 열강이 있었다.

1) 영국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상을 제국 통치했고, 부유한 산업을 소유하고 있었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자국 및 식민지를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했다. 19세기 동안, 영국은 고립정책을 취하며 유럽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2) 프랑스 또한 해외 식민지를 건설했다. 프랑스인들은 1871년 보불전쟁에서 독일에게 알자스(Alsace)와 로레인(Lorraine)을 빼앗긴 것을 억울해 했다.

3) 러시아는 가난했지만 유럽 최고의 대국이었다. 니콜라이 2세 (Tsar Nicholars II)가 통치했다. 해외 식민지는 없었지만 바다로 접근이 가능한 유럽과 아시아에 식민지 개척을 원했다.

4) 오스트리아-헝가리는 10여개국으로 구성된 중유럽 제국이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독립을 원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Emperor Franz Joseph I)가 통치했다.

5) 독일은 카이저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가 통치하는 작은 제국이었다. 카이저 황제는 영국의 뛰어난 해상력과 부유한 자원식민지를 질투했다. 그리고 독일의 영향력과 해외에서 부를 키우기를 원했다. 그는 독일의 작은 식민 제국을 ‘양지'(place in the sun)로 묘사하면서 이를 확장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14년 당시 유럽의 육해군 크기 비교
영국 전함: 185대 & 병력: 70만명
프랑스 전함: 62대 & 병력: 1백만명
러시아 전함: 30대 & 병력: 1백20만명
오스트리아-헝가리 전함: 28대 & 병력: 80만명
독일 전함: 100대 & 병력: 2백만만명

안보를 위해 동맹관계를 형성했다.

이들 국가들은 서로 돕기 위한 조약들을 만들었다.

1) 1879: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간의 2국 동맹 형성

2) 1882: 이탈리아가 2국 동맹에 참여하면서 3국 동맹 체제로 돌입. 이 동맹들로 인해 중유럽 지역의 거대한 동맹 집단이 형성되면서 프랑스와 러시아를 자극하게 되었다.

3) 1892: 3국 동맹에 반대하여 러시아-프랑스 동맹 형성

4) 1904: 영국과 프랑스간 화친협정

5) 1907: 영국-러시아 간 화친협정이 체결되면서 러시아, 영국 그리고 프랑스간 3국 화친협정 으로 재형성

화친협정들은 군사협정은 아니었지만, 3국 동맹과 3국 화친협정 간의 긴장으로 말미암아 군대를 개입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동맹과 화친협정은 주요 강대국들 간에 긴장을 고조시켰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이탈리아는 3국 화친협정국들에 둘러싸여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러시아는 발칸반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본심을 알아채고 이를 견제했던 반면, 영국과 독일은 세계 최고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제 정치 - 교활한 비즈니스 
각 국은 아이디어 공유를 위해 동맹 관계를 형성했는데, 이것은 패거리로 적에게 맞서는 방법과 같았다. 이들 국가들의 주요 강점 및 이들이 형성했던 
동맹들을 나열하여 적어보자.

긴장 관계의 형성 1900-1914

유럽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는데, 독일과 영국이 주요 역할을 했다.

독일과 영국 간 군비 확장 경쟁이 시작되었다.

1) 카이저 황제는 독일이 세계 최고의 열강이 되기를 원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해군 전력 강화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독일은 ‘세계정책(Weltpolitik)’을 실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독일 병력 강화 및 독일 제국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매우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의미한다.

2) 1900년에서 1914년까지 독일은 해군 규모를 두 배로 확장하고자 했다.

3) 영국에는 2국 표준원칙 정책(Two Power Standard)이 있었는데, 이는 영국의 해군력은 언제나 유럽에서 영국 다음가는 두 나라의 해군력을 합친 것과 같거나 커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영국은 해상에서 절대 열세일 수 없다는 의미이다.

4) 영국은 1906년 드레드노트 전함을 건조하여, 독일의 해군력 향상에 대비했다.

5) 독일은 1907년과 1908년에 전함을 직접 건조했으나, 이 후 1912년 영국은 이보다 더 큰 새로운 전함을 건조했다.

6) 1914년까지 영국은 모두 29개의 드레드노트 전함을 그리고 독일은 17개의 전함을 건조했다.

주요 열강들이 전쟁을 계획했다.

1) 동부와 서부 국경에 적국들이 대치되어 있었던 독일은 1905년 슐리펜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전쟁 시 러시아가 전쟁을 개시하기 전에 독일이 프랑스를 무찌르고, 그 이후 러시아와 싸운다는 것이다.

2) 프랑스는 제 17호 계획(Plan 17)을 준비하여 독일로부터 알자스와 로레인을 회복하고자 했다.

3) 영국은 15만 병력의 원정군을 창설하여 전쟁이 발발할 경우 유럽으로 즉시 출병할 수 있도록 태세를 정비했다.

4) 러시아는 전쟁에 대비하여 1909년 군부대를 증강하기 시작했다.

모로코를 둘러싼 두 차례의 위기

모로코 위기 1905-6

1) 프랑스는 아프리카 독립국인 모로코를 프랑스 식민제국에 영입하고자 했다.
2) 독일은 이에 반대하여 모로코의 미래에 대한 국제회의를 요구했다.
3) 1906년에 열린 알헤시라스 회의(Algeciras Conference)에서 독일은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그리고 스페인이 프랑스의 모로코 경찰과 은행 지배권 획득에 찬성하면서 의견이 묵살되었다.

아가디르(Agadir) 위기 1911

1) 프랑스는 모로코 반란군들과 싸우기 위해 모로코의 페스(Fez)로 군대를 파견했다.
2) 이에 독일은 프랑스가 모로코를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3) 독일은 아가디르에 군함 팬더(Panther)를 보내 프랑스가 프랑스령 콩고를 그들에게 넘기도록 강요했다.
4) 영국은 독일의 아가디르 해군기지 건설이 영국의 주요 해협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여, 영국도 아가디르에 군함을 보냈다.
5) 독일은 결국 모로코에서의 프랑스의 영향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점점 반영 감정이 커지고 있었다.
갈등의 초읽기 돌입 – 단지 시간 문제일 뿐...
제 1차 세계대전 발발에 대한 3가지 주요 요소를 정리해 보자. 군비 확장 경쟁이 시작되면서 전쟁 가능성이 명백해졌고, 
특히 독일은 영국을 능가하는 힘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발칸반도에서의 분쟁

발칸반도는 일명 ‘유럽의 화약고’로서 혼란을 가져올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발칸반도는 터키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1) 발칸반도는 남동부 유럽의 빈곤 지역이었다.

2) 터키제국은 (오트만 제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통치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증가 및 민족주의의 대두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터키제국을 가리켜 ‘유럽의 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많은 열강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1) 독일은 발칸반도를 관통하여 동유럽으로 향하는 철도를 건설하고자 했다.

2)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세르비아가 자국 내에 거주하는 슬라브 민족에 대한 선동을 중지하기 원했다. 슬라브족은 독립을 원했고 세르비아 (슬라브 민족 국가)가 이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3) 러시아 또한 슬라브 민족 국가이다. 러시아는 터키제국이 통제하는 해협을 통해 흑해에서 지중해로의 해상 접근을 원했다.

4) 이탈리아는 반대편의 아드리아 해에 대한 통제권을 원했다. 이탈리아는 1911년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트리폴리를 차지했다.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보스니아와 헤르제고비나를 무력 합병했다.

1)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1878년 조약을 통해 보스니아 통제권을 확보했다. 이들은 보스니아를 이들의 제국 일부로 공식화하고자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터키해협을 통해 러시아 전함의 접근을 지원한다면 이 ‘합병’을 지원할 것이라는 러시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2) 러시아는 다른 열강들의 반대로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무력 합병을 추진했다. 러시아는 이의를 제기했으나,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동맹국으로서 이들을 지원했다. 러시아는 이들에 대항할만한 힘이 없었고, 이로 인해 분노하고 굴욕감을 느끼게 되었다.

긴장을 부추긴 두 개의 전쟁

제1차 발칸전쟁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그리고 몬테니그로가 발칸동맹(Balkan League)을 체결하여 1912년 터키제국을 공격했다. 터키족은 쉽게 패배하여 발칸 지역 밖으로 내몰리면서 그들의 영토를 포기해야 했다.

제2차 발칸전쟁

1913년 발칸동맹국 내에서 불가리아가 그리스와 세르비아와 전쟁을 벌였다. 터키와 루마니아가 그리스와 세르비아가 동맹을 맺으면서, 불가리아는 패배하여 이들에게 영토를 빼앗겼다.

이 두 전쟁에서, 영국은 세르비아 편에 섰던 러시아를 지원하는 대신 평화를 유지하려 했다. 이에 대해, 독일은 3국 협상의 결렬이 임박한 것으로 해석했다.

발칸반도에서는 이 외에도 몇 개의 사건이 있었다...
발칸반도에서의 긴장이 제 1차 세계대전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슬라브족 문제이다. 즉, 세르비아는 
이 지역에서 슬라브족을 통합하기 원했고 보스니아의 무력합병에 대해 분노했다는 것이다.

전쟁 발발

긴장관계가 갑작스럽게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폭발했고, 이는 바로 발칸반도에서 시작되었다.

흑수단(Black Hand)은 세르비아 민족주의 단체 중 하나이다.

1) 흑수단은 모든 세르비아인들의 통합을 목적으로 세르비아에서 출범했다.

2)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는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제국 내 영토 특히 보스니아에서의 반란을 두려워했다.

프란츠 페르디난드 암살이 문제를 야기시켰다.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왕권의 계승자였다. 그는 당시 제국에 대한 보스니아인들의 충성을 호소하기 위해 보스니아를 방문했다.

페르디난드는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프린치프 (Princip)라는 이름의 세르비아 학생에 의해 암살당했다. 프린치프는 흑수단 회원이었고, 오스트리아는 매우 분노했다.

모든 사건들이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결과는 중요하다. 3국 동맹 (Triple Alliance)과 3국 협상 (Triple Entente)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양분되어 제 1차 세계대전을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7월 23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암살에 대해 세르비아 정보를 비난했고, 이에 대한 보상과 세르비아로의 병력 파병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다.

7월 28일:  세르비아는 이들 병력 투입을 거부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세르비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베오그라드를 폭격하다.

7월 29일: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해 병력 투입을 준비하기 시작하다.

7월 30일:  독일은 러시아에게 병력 투입 중지를 요구하다.

8월  1일:  러시아는 이를 거부하고, 독일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8월  2일:  프랑스가 러시아 지원을 위해 출병을 시작하다.

8월  3일:  독일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8월  4일:  독일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병력을 투입하여 벨기에를 통하여 프랑스를 공격하다. 벨기에는 중립을 유지하고, 영국은 벨기에를 
          보호하는 데 동의했다. 영국은 독일에게 철수를 요구하고, 독일은 이를 거절하다.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을 선호하다. 

8월  6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이 모든 일들이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발생한 것을 보면, 이 기간은 합리적 사고를 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제 1차 세계대전 – 서로가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
물론 모든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다음은 반드시 확실하게 이해하자. 일련의 사건들과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하면서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지원하게 되는 등의 연합체제가 의미하는 것 등.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