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을 다시 생각하며

제1차 세계대전을 다시 생각하며

금년은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로 세계 각지에서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이라고 불리었던 이 끔찍하고 지긋지긋했던 전쟁을 되짚어 보고 이런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여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차원의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특히 금년 여름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관련된 행사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개전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알려진 1914년 6월 28일에 발생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 암살 사건 100주년인 지난 6월 28일 무렵에도 세계 유수의 신문과 잡지 등이 당시 자기네 신문과 잡지에서 이 소식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소개하기도 하였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여 전쟁이 공식 발발한 7월 28일, 그리고 독일이 당시 중립국이던 벨기에를 침공한 8월 4일 등에 여러 가지 기념행사 등이 열리고 관련 보도들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전쟁이 터졌을 때 유럽 각국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그야말로 열광 속으로 빠져들었는데, 기이하게도 주요 참전국 모두가, 삼국동맹(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태리)과 삼국협상(영국, 러시아, 프랑스)으로 진영이 나뉘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편이, 내 나라가 이긴다는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질 수밖에 없음에도)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개전을 결정하고 동원령을 내리고 병력을 실제로 움직인 황제와 왕, 대통령과 수상, 장군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제일 소름 끼치는 것은 그런 비이성적인 필승의 확신이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각국의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었던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나중에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흉이 된 오스트리아 출신 장래의 하사관(=히틀러)이 군중 속에서 열광하는 모습이 그 대표적인 상황이라고 할 것이라면, 프랑스에서는 상황은 좀 더 폭력적으로까지 발전해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던 저명한 사회주의자 정치인 조레스는 암살당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주장하여 온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모두 전쟁에 반대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도 이런 민족주의적 집단광기에 휩쓸려 들어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찬성했다, 마르크스의 절친인 엥겔스가 절친 사후에 애써 가꿔 놓은 사회주의자들의 국제조직 제2차 인터내셔널(인터내셔널가를 주제가로 가진 바로 그 단체)은 전쟁 발발시 총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각국에서 오기로 한 사회주의 정당, 단체, 노동조합 대표들이 모두 자기네 나라에서의 전쟁 찬성 움직임에 동조하고 정신없이 민족주의적 집단광기에 빠져 들었는지라 정말 거의 아무도 총회에 나타나지 않아서 하루 아침에 조직이 와해되었다. 이 총회에 참석해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자랑스럽게 외칠 대의원들에게 나눠 줄 뱃지를 준비했던 제2차 인터내셔널 사무국측은 텅 빈 회의장에 수북히 쌓인 뱃지들을 보고 망연자실한 상태에 빠져 있는 모습을 아이작 도이처가 쓴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의 전기 첫권인 [무장한 예언자]는 생생히 전하고 있다.

이 제2차 인터내셔널은 자본가와 지배계급이 전쟁을 해도 우리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은 서로 싸우지 말고 총파업을 일으켜서 무기 만드는 공장도 멈추게 하고 전쟁물자를 항구에서 실어 나르지 못하게 하자며 총회가 열릴 때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다짐해 왔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연대와 단합을 보여주어야 할 결정적 순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전쟁에 열광하면서 우루루 거리로 몰려나가 자기네 나라 지배계급과의 이른바 성내의 평화를 달성하는 대신 국경선 너머의 사회주의자 동지들과 노동자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당시 유럽 최대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의회 내에도 진출해 있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에서는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국채발행 의안이 독일제국 의회에 올라오자 칼 리프크네히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고 그와 로자 룩셈부르크 정도가 외롭게 전쟁 반대를 외친 정도였다.

러시아의 상황도 별반 다를 게 없었으니 영화 [닥터 지바고]에 보면 전쟁 발발 후에 해맑은 모습으로 자원 입대하는 농민과 노동자들, 지식인들의 모습들이 소름 끼치도록 잘 그려져 있다.

그리고 역시나 기이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 개전 무렵에 이렇게 유럽대륙과 러시아를 휩쓴 민족주의적 열풍 속에 역시 양진영 모두에 전쟁은 신속히 끝날 것이고 자기네 편이 이길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틀.렸.다. 전쟁은 일단 터지고 나자 당대의 유럽인들을 모두 집어 삼켰다. 가장 전쟁에 열광하고 애국심으로 충만한 젊은이들부터 희생의 제물로 바쳐졌다.

영국과 프랑스군이 독일군에 맞섰던 서부전선엔 기다란 참호가 전선을 따라 양 진영에 만들어지고 3년(!) 넘게 지리하게 이어진 교착상태의 참호전 속에서 수백만 명의 꽃다운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이상에 불타던 독일 청년이 참호전의 끔찍함 속에서 전쟁에 환멸을 느끼는 상황과 그와 같은 청년 하나쯤 죽어도 보고서에는 전선은 고요했고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비정한 보고만 올라가는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프랑스 영화인 [A very long engagement]에서는 참호전 속에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생존하고자 하는 프랑스군인들의 절망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마가렛 미첼이 그녀의 유일한 작품인 미국 남북전쟁을 다룬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말했듯이 이제 전쟁이 몇 년 계속되고 나니까 도대체 서로 죽고 죽이고 때려부순 이 미친 짓을 다들 왜 처음에 시작했는지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두 잊어버리게 되었고 그저 하루하루 버티어 내고 살아남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19세기가 유럽인들에게 심어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진보하고 합리적인 이성으로 사회 문제가 조절될 것이란 믿음은 4년 이상 유럽 전역과 러시아를 탈탈 털며 전개된, 모든 전쟁을 끝나게 하기 위해 시작된 전쟁이라 불린 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박살이 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의 교전국 각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품었던 이러한 민족주의적 집단광기와 터무니없는 낙관주의가 오늘, 여기의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나는 특히나 동아시아에서는 요새 들어서 서로 마주보고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는 느낌을 주는 중국과 일본의(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번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모습이 위와 같은 상황으로 절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치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시민들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민족주의적 집단 광기랄까 애국주의의 열풍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비이성적이고 무서운 과정을 거쳐 번져나갈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러한 광기의 확산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희생자로 바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맞아 교훈으로 새기며 상호 이해를 넓히는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