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의 세계

전쟁 이후의 세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일본은 오세아니아의 군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아 반성보다 지독한 가난과 배상금에 대한 것에 시달렸으며 오스만 튀르크도 세브르 조약을 맺음으로써 영토가 크게 줄어들었다(1922년 해체,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도 각각 생제르맹 조약, 트리아농 조약을 맺음으로써 영토가 크게 줄어들었다. 불가리아는 뇌이 조약으로 도브루자를 루마니아에 떼어주었다.

이탈리아는 승전국이었으나 연합국에게 영토를 보장받기는커녕 냉대를 받았다. 결국 1922년에 베니토 무솔리니에 의한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된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연합국임에도 불구하고 산둥 반도에 대한 이권을 돌려받지 못하였다.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중앙유럽의 많은 국가는 독립하였으며, 독립을 조건으로 영국을 도왔던 인도는 그 약속이 무산되자 지속적인 투쟁 운동을 시작했다.

한편,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하였으며, 전쟁의 방지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국제 연맹을 설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로써 국제 연맹이 설립되었으나, 정작 미국은 의회의 반대로 가입에 실패하였다. 결국 다시 고립의 길을 걸었다.

연표

1차 대전의 결과와 의의, 그리고 그 영향

참호 건너기에 실패한 탱크

  1.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선언하여 국제 정치가 이념화, 도덕화하기 시작했다. 이상적 집단 안전 보장 정책인 국제 연맹을 통해 법률적, 도덕적 세계 여론에 부응하여 평화를 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2. 이 때부터 총력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특히 벨기에 왕국, 러시아 제국과 독일 제국은 식량 부족이 심각했다.
  3. 전쟁 기간동안 맥심 기관총(영국), 독가스(독일), 탱크(영국), 전투기(영국, 프랑스, 독일), 유보트(독일), 곡사포(오스트리아)등의 신무기가 생겨났다.
  4. 독일 국민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일방적 평화의 강요나 다름없는 베르사유 조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 조약은 아돌프 히틀러 집권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바이마르 공화국이 외부로부터 강요된 체제라고 하여 민주 정부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갖지 못하게 하여 공화국의 생명력을 위태롭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5. 이탈리아의 좌절감과 배신감은 파시즘의 발전과 베니토 무솔리니의 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6.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으나,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연맹 참여를 거부하고 다시 고립주의에 빠짐으로써 강대국으로서 국제 역할에 괴리를 가져왔다. 결국 경제 공황이 생겨난다.
  7. 많은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하여 다른 국가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민족자결주의로 민족주의가 상승하여 20세기 정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인도, 조선등에서 독립 운동 활발}.
  8. 일본은 영·일 동맹을 근거로 연합군 측에 가담하여 1차 대전기간 동안 여러이득을 보았고, 경제 호황기를 누림으로써 대체로 만족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일 동맹을 이유로 연합국측에 가담하여 참전했다. 그 진의는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위를 더 높이고 국제적인 발언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124][125] 1914년 8월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한 후, 일본 육군은 중국에 있던 독일의 조차지 산둥 반도의 자오저우 만(칭다오 포함)을, 일본 해군은 태평양의 독일령 남양군도를 점령하고,[126][127] 이 지역에서의 이권을 할양받는 것을 영국과 프랑스가 승인하는 조건으로 지중해에 소규모 함대만을 파견하는 등 독일과의 직접적인 전투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128] 산둥 반도를 점령하고 나서, 일본은 중국에 대해 만주와 산동반도 등에 대한 일본의 이권을 반영구화하고, 남만주와 내몽골 일부를 일본에 조차하는 것을 요지로 하는 등 21가지 특혜조건을 요구(1915년 1월)하였고, 중국은 이를 수용(5월)할 수 밖에 없었다. (→21개조 요구) 이와 같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5·4 운동(1919년)과 같은 격렬한 배일(排日) 여론에 밀려 실패하였다.[129] 한편, 러시아 혁명(1917년)에 뒤이어 일어난 러시아 내전(1917~22년)에서 일본은 러시아 백군을 도와 7만 2천여명의 병력을 시베리아에 파견하였으나 패배하였다.[130](→일본의 역사)
  9. 중국은 1917년에 연합국으로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산둥 반도를 차지한 것에 불만을 품었고, 사인도 하지 않고 국제 회의장에서 철수한다. 이것은 5․4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10. 국제 정치는 이제 유럽에만 힘을 기울일 수 없게 되었다. 전 세계가 국제 정치의 무대가 되었으며, 국제 정치가 좁은 유럽에서 벗어나 전 세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1. 전 세계 국민의 감시 속에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전 세계 지도자들이 가지게 되었다. 특히, 도덕적으로 국제 평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12.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났고, 민주주의가 발달하였으며, 사회구성원간의 평등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게 되었다.
  13. 국제 정치에도 변화가 크게 나타나 독일, 러시아 등의 전제 국가들이 무너지거나 해체되었고, 유럽 국가들의 절반에 가까운 국가에서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동맹국과 러시아의 전후 결과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탄생

  • 막대한 배상금 지불
  • 독일의 일부 영토였던 폴란드 땅이 독립하게 됨
  • 알자스-로렌: 프랑스에 병합
  • 아프리카 식민지

– 르완다, 부룬디(벨기에 위임 통치령)
– 탄자니아(영국 위임통치령)
– 카메룬, 토고: 영국과 프랑스의 분할
– 산둥반도는 일본에 조차
– 독일 제국의 태평양 식민지는 미국과 일본이 분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폴란드(신생국), 이탈리아에 일부 영토 할양.
  • 유고슬라비아 왕국: 크로아티아, 체코슬로바키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가 연합 왕국으로 독립한 후 유고슬라비아 왕국 건설
  •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한 왕국이 됨, 루마니아에 일부 영토 할양.
  • 오스트리아 자체는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으로 탄생

러시아 제국

  • 발트 3국 및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폴란드, 핀란드 독립
  • 루마니아에 일부 영토 할양

오스만 제국

  • 터키 공화국 탄생
  • 그리스에 이즈미르 할양
  • 영국 위임 통치령: 트란스요르단, 키프로스, 이라크
  • 프랑스 위임 통치령: 시리아, 레바논, 아르메니아
  • 네지드 술탄국과 헤자즈 왕국에 메카, 메디나 등을 할양
  • 연합국과 세브르 조약 체결

사상자

독일, 러시아, 프랑스 순으로 희생자를 많이 냈다. 반대로 일본은 희생자를 가장 적게 냈다.

  • 독일 제국 독일 제국 : 2,030,000명 전사
  •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 1,700,000명 전사
  • 프랑스 프랑스 식민제국 : 1,400,000명 전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1,200,000명 전사
  • 대영 제국 대영 제국 : 900,000명 전사
  • 일본 제국 일본 제국 : 300명 전사, 900명 부상, 3명 실종 (총 1,203명 희생)

기술

이 전쟁으로 인해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 그러나 독가스와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들도 개발되어 나왔다. 최초의 독가스는 독일군이 사용하였으며, 연합군도 같은 무기로 대응했다. 독가스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은 양측 모두 방독면 외에는 없었다. 독가스가 사용된 것은 마른 전투 이래 기관총, 철조망, 참호선으로 고착화된 전선을 뚫기 위해서였다. 탱크도 참호선을 뚫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대포도 점점 대구경화되었다. 장거리 사격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열차포(독일의 크루프 열차가 유명하다)도 등장하였다.

기술의 개선은 전방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생리대를 들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러한 여성을 위해 생리대가 개발되었다.

명언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상은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의 화가 오토 딕스(독일어: Otto Dix, 1891년 ~ 1969년)는 참호전의 참상을 그린 〈전쟁〉(1929년 작)에서 참호 속에 흩어진 사지와 흙더미에 거꾸로 박힌 시체, 피범벅이 된 진흙탕을 묘사하였다. 하필이면 왜 저렇게 끔찍하게 묘사하였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딕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 저랬다. 나는 보았다.”[132]

한편 영국의 시인 윌프레드 오언(영어: Wilfred Owen, 1893년-1918년)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반전시 《고귀한 영예》를 발표하였다.

모병 포스터

미국

미국의 가장 유명한 모병 포스터 “샘 아저씨는 네가 육군에 지원하기를 원한다.” (1917년 작)

미국의 역대 신병 모집 포스터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엉클 샘이 그려진 포스터가 있다. 아래 글귀에는 “샘 아저씨는 네가 육군에 지원하기를 원한다.”라고 쓰여져 있다. 미국 해군에서도 육군 못지않게 모병 포스터를 많이 발행했다.

영국

영국의 모병 포스터 “누가 빠졌습니까? 당신입니까?”

영국도 미국 못지않게 신병모집 포스터를 만들었다. 영국은 독일보다 인구가 부족하여 미성년자들까지 징집한 적이 있었다(주로 공부할 의지가 없는 남학생들이 해당되었다). 실제로 유틀란트 해전(1916년 덴마크 근처의 유틀란트 만에서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투)에 참전한 어떤 수병의 나이는 만15세였다고 한다.

  • BE READY? JOIN NOW! : 준비가 되었습니까? 지금 참여하십시오!
  • TAKE UP THE SWORD OF JUSTICE : 정의의 칼을 잡으십시오.
  • WHO’S ABSENT? IS IT YOU? : 누가 빠졌습니까? 당신입니까?
  • THERE’S ROOM FOR YOU ENLIST TO-DAY : 당신이 오늘 지원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 WOMEN OF BRITAIN SAY – “GO!” : 영국의 여성들은 말합니다. “가세요!”
  • DADDY, WHAT DID YOU DO IN THE GREAT WAR? : 아버지, 아버지는 1차 대전 때 무엇을 하셨나요?

미디어

파일:Bombers of WW1.ogv

연합군이 독일의 방어선을 향해 폭격하는 모습

파일:Tanks of WWI.ogv

프랑스와 영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시대 전차